다가오는 시들

'시인마을'에서 옮겨적은 글들 1

나무숲산 2007. 8. 22. 18:02

그 꽃

     - 고 은  :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내려갈 때 보앗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함박눈

    - 고  은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밤눈

    - 김 광규   :  1941년~ 서울 출생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겨울밤

노천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꾸러움 감출 수 잇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싶었다

 

일주문 앞

 - 김광규     :  194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갈잎나무 이파리 다 떨어진 절길

일주문 앞

비닐천막을 친 노점에서

젊은 스님이

꼬치오뎅을 사 먹는다

귀영하는 사병처럼 서둘러

국물까지 후루룩 마신다

산속에는 추위가 빨리 온다

겨울이 두렵지는 않지만

튼튼하고 힘이 잇어야

참선도 할 수 있다 

 

 

 

그대 얼굴은

-  정 양       :  1942년~ 전북 김제 출생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내눈은 근시와 원시와 난시가

뒤범벅이다 안경으로는

다 감당 못한다

 

차 몰 때 안경을 쓰고

책 읽을때는 벗는다

오래써도 오래 벗어도

눈이 아프고 눈물이 나다

 

벗으면 먼데가

쓰면 가까운 것들이 가물거린다

안경 벗어도 눈 감아도

그대얼굴은 늘

아프게 가물거린다

 

 

토막말

- 정 양

 

가을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대문짝만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한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겄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ㅇ므조작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기러기 가족

  -  이 상국    :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으로  등단

 

-아버지 송지호에서 좀 쉬었다 가요.

 

- 시베리아는 멀다.

 

-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해요?

 

-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국수가 먹고싶다

-  이 상국

 

사는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행 장거리로

소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