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론에서 길을 잃다
김 윤배
부론은 목계강 하류 어디쯤
초여름 붉은 강물을 따라가다 만난 곳이니
하류의 작은 마을일 것이다
가슴에서 나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가을 건너고 겨울 건넜다
나는 그 긴 계절을 부론에 머물고 있었다
부론에 눈발 날리고 까마귀들이 날았을 때
부론의 붉은 하늘이
언 강 껴안고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목계강은 겨울 내내 쩡정 소리를 내며
부론을 불렀으나
부론은 강물 향해 나아가지 않았다
강물 가득 부론 담았던 목계강은
더 깊은 소리로 부론을 불렀다
부론은 지상에 없었다 부론은
내 가슴에 남아 쓸쓸히 낡아갔다
나는 부론을 떠나고 싶었으나
지상에 없는 부론은 출구가 없었다
나는 부론에서 길을 잃었다
부론은 내 몸의 오지였다
김윤배 시집"부론에서 길을 잃다"(문학과 지성사)에서
부론이라는 지명의 지리적 여건은 강원도와 충청도 경기도를 아우르는 강물이 합수몰이 되어 흐르는 지점이다 김윤배 시인이 길을 잃은 것은 아마도 자신의 발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지역적 공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가 부론을 처음 찾은 것이 15년 전이니 아직도 부론은 내게 길을 내어 주지 않는 곳이다 사람이 그 자연의 심취에 빠져 수십번을 찾아가도 자연은 쉽게 그 마음을 열지 않는 곳이 있다 때에 다라서는 한 번 발길을 머믄 곳이지만 마음이 열려 글이 써지는 곳이 있다 하나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부론 강에 부론이 더 나아가지 않는 이치도 강물은 담아내고자 하는 그 만큼만 담아 흐른다 깍아지른 절벽 하나 껴안고 흐르는 것도 힘겨운 부론 강물에 고즈넉한 풍경은 강태공의 낙시 줄에 몇 걸은 파문을 뿌리치고 다시 잠잠하다 나는 그 강물을 껴안고 돌아 서서 이 시 배경을 그려보았다.
목계 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박가분 : 여자들의 화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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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우동가게
이름부터 정겨운 이 곳은, 마흔을 훌쩍 넘긴 주인장 강순희씨의 삶의 터전이자 그녀의 글이 태어나는 곳이다.
허나 그만의 가게라 하기에는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터이니, 이는 우동을 위해, 한잔 술을 위해, 따뜻한 정을 찾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손님들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 사연을 담아, 주인장이 책으로 엮었다. 이름하여 '행복한 우동가게'.
어린시절부터 소설가의 꿈을 키워온 강순희씨는 부잣집 딸로 부유하게 자라나 충주로 시집 온다. 남편의 사업도 잘되어 여유로운 사모님으로 지내던 강순희씨는 96년 평화신문의 평화문학상과 97년 문예사조에 당선되면서 여류소설가의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나 IMF의 여파로 남편의 중소기업은 부도가 나고, 그녀의 말을 빌러 그의 가족들은 '흩어진 밀가루 같은 슬픈 입자'가 되었다.
졸지에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할 가장이 된 이 여인은, 친구의 도움으로 우동가게를 연다. 바들바들 떨며 첫 손님을 받고 교차하는 오만가지 생각에 자신을 다독이던 그녀는 어느새 '이 집 아니면 난 우동을 안 먹어' 할 정도의 단골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이 단골들은 그냥 후루룩~ 우동만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인심 좋게 내어주는 커피까지 함께 하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이 이야기와 삶은 고단해도 가슴 한 켠에 문학의 꿈을 저버리지 않는 문학소녀가 만났으니, 이야기가 한 가락, 두 가락의 글로 이어지고야 만다. 책을 읽으면 조미료를 넣지 않은 이 집의 수타 우동 한 그릇이 여간 탐나는 것이 아니다. 충주에 가서 행복한 우동가게에 들러, 후루룩 우동 한 사발 들이키고 싶고, 근사한 싯구가 아니더라도 몇자 끄적여 가게에 남기고 싶으며, 항상 웃기만 해서 수녀님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그 주인장의 따뜻한 미소를 느끼고 싶다.
세상으로 나눈 행주치마 속 이야기, 강순희씨가 우동가락을 뽑는 손을 멈추지 않는 한, 그녀의 펜 끝에서 나오는 사람사는 이야기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정겨운 몇 가락 이야기가 그리운 날 '행복한 우동가게'를 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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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 정호승
얼어붙은 남한강 한가운데에
나룻배 한 척 떠 있습니다
첫얼음이 얼기 전에
어디론가
멀리 가고파서
제딴에는 먼바다를 생각하다가
그만 얼어 붙어 버리고 말앗습니다
나룻배를 사모하는 남한강 갈대들이
하룻밤 사이에 겨울을 불러들여
아무데도 못가게 붙들어둔 줄을
나룻배는 저 혼자만 모르고 있습니다
정호승 시집 ㅡ남한강 ㅡ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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