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수발은 나의 노후대책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을입니다.
유난히도
청명하고 하늘이 높게 보이는 이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물들여진 단풍놀이를 가노라 산으로 산으로 발길을 옮겨놓아 산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좋은 계절에 아름답고 결실의 가을을 느끼기보다는 겨우살이 준비를 해야 하는 걱정으로 근심만 쌓여 가는 노인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경남사회복지관 가정봉사원이란 이름으로 노인 수발을 하기 위하여 수급 노인 분 들의 가정에 가정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가정봉사를
하면서 방문세대마다 제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분들이라 개인 개인의 성격을 파악하기엔 적잖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주
방문을 하면서 그 분들의 가치관에 맞추어 대화가 되는 친구가 되기는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노인
분 들께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 서기엔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때론 카운슬러가 되어야 하고, 때론
의사가 되어야 할 때도 있기에 3-4개월을 거쳐 카운슬러 수강도 받고 발 마사지도 배우서 열심히 배우고 실습도 하고 그러다 지금은
부족하나마 노인 분 들께 편하게 대화하고 발 마사지도 열심히 하여 많이 시원해 하시고 몸이 한결 가볍고 덜 아프다는 말씀을
들을 때면 제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답니다.
제가
방문하는 여러 세대가 있지만 조금은 다른 세대, 즉, 남들은 자식이 없어 서럽다고 하지만 자식이 있어 서러운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할머니께 2002년 3월19일에 첫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걸음도
재대로 걷지 못하시고 가사일은 전혀 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요실금이
심하여 옷에다 소변을 자주 저려 집에 들어가면 재취기가 나와서 몇 차례나 채취기를 하면 할머니는 감기 들었냐고 하셨답니다.
그래도
이웃에서 놀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 외로움은 작아지겠지만 오시는 분들마다 술을 좋아하시는 탓에 할머니에게 도움 주는 분들은 없으며 술을 드시고
많이 어질러놓고 가시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댁의 하수구가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수구
받침대를 꺼내고 손으로 하수구 구멍 속의 이물질을 꺼내려고 넣어보니 무엇인가 물렁하게 잡히는 게 있어 깜짝 놀라 보니 누군가 술에 취해 그랬는지
대변을 그곳에다 보았던 것입니다.
가정봉사
하는 게 정말 쉬운 게 아니라는걸 새삼 알게 해 주는 날 이었습니다.
2003년 겨울에 할머니께서 다리 골절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인 구정을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만 큰 아들은 서울에 있고 둘째는 한 동네 살고 있지만 그때 사항의 이야기를
보통사람이라면 저의 말을 믿지 못하리 만큼 돌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에게
재활이란 치료가 더 필요했지만 할머니에게 아무런 해당이 되지 않는 자신에게 경제적인 소외감만 더 무거워 질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아들이 없는 노인이었더라면 재활과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래도 최소한의 대접은 받았을 텐데 대, 소변의 처리도 되지 않는 분을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전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다른 노인 분들은 자식이 없어 서럽다고 하시지만 그 할머니는 자식이 있어 서러운 가정 형편이었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방치해놓는 자식이 없었더라면 정부의 도움이라도 받게 되어 지금쯤은 화장실에는 자신의 힘으로 다녀 오실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댁은 좁은 단칸방에다 둘이서 들어서지도 못할 좁은 부엌이 있습니다.
그런
좁은 부엌에 신체가 큰 할머니를 목욕시키려면 여름에는 갈아입을 옷을 챙겨가야 했습니다.
목욕을
시키는 중 나의 온 몸은 땀으로 목욕을 하게 되고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할머니가 다치게 될까 싶어 혼신을 다 하여 방으로 모시면서 나의
몸은 미끄러져 꼬리뼈를 다쳐 몇 달을 고생하고 지금은 골반을 다쳐 치료비도 많이 들었답니다. 아직도 아픈
곳이 완치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전 할머니 댁에 방문을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금년 4월에 저의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우제 지내던 다음날 돌아오면서 우리 집에도 들리지 않고 할머니 댁에 먼저
방문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고 나를 기다리는 그 분을 생각해보면 그 동안 동작이 활발하지 못한 분이 생활 하는 게 불 보듯 뻔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힘든 만큼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도 욕창이 생기지 않고 나에게 언제나 고맙고 미안해 할머니를 보면 돌아가는 나의 발길이
가볍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할머니의 걱정 한가지가 없어졌답니다.
수급자가
아니라고 지난해부터 동 사무소에 도시락 신청을 하였지만 배달 받지 못했는데 금년 4월19일에 신청하여 7월7일부터
도시락이 배달오기 때문에 한 걱정 없어지고 할머니에게도 따뜻한 점심 한끼라도 제대로 잡수시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지금은
겨울의 그림자 앞에 계절이 휴면( 休眠 )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벌써 겨울 옷 겹바지를 입고
목도리까지 하고 계십니다.
그러다
보니 동작은 더 둔해져서 소변 하기는 힘들어지고 옷에다 소변을 더 자주 보게 되어 세탁감도 자연스레 많아져 저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할머니께선 내가 왜 죽지 않을까 하시며 이 넓은 세상에 내가 죽으면 한줌의 흙으로 돌아 갈 텐데 이 질긴 목숨이 원망스럽다고
속말처럼 흘러나오는 안타까운 말속에 또 한번 자식 있어 서러움이 바로 저런 생각이 들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심장은 뛰고 있어 살아있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할머니의 마음속엔 이미 자신을 저 깊은 산속에 묻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며느리에게도 곧 자신의 며느리를 본다고 하는데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또한 시어머니 값을 어떻게 할지 가 때론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니
지금의 할머니가 소외감 받고 살아 가고 있는 그만큼만 소외되어 살아보라는 나쁜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가면 골목길에 놀고 계시던 노인 분들이 어느 분은 빨래해 주러 온다고, 어느 분은 목욕해 주러 온다고
하십니다.
이웃
분들이 봉사 새댁이 와서 이렇게 할머니를 살게 해 준다고 고마워하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할머니께 충분하게 해 드리지 못해 언제나 미안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노인 수발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욕심을 버리는 마음 비우기 연습도 많이 하였기에 우리
가정에도 많이 혜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저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라 앞으로 많은 복을 받게 될 거라는 말씀들을 자주 해 주시지만 사실 제가 나이 들어 살아갈 길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제가 봉사 하는 게 아니라 저의 노후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노인 댁에 방문하는 날 까지 진심으로 인격적인 대우를 하면서 여태까지도 살아있는 동안에 욕창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말 소변이 묻은 하체를 자주 씻기고 마사지 부지런히 했듯이 열심히 방문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